2025 Teoconf 발표 후기
2025-12-11 · 6 min
40페이지짜리 슬라이드를 다 만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발표는 기술을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라 청중이 가져갈 한 문장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테오콘 신청과 사전 미팅, 혹독했던 사전 녹화 피드백, 그리고 무대 위까지의 기록입니다.

🎤 발표 후기: ‘내가 하고 싶은 말’ 대신 ‘청중이 가져갈 한 문장’을 찾기까지
이번 테오콘 발표는 내게 하나의 도전이었다.
디자인 시스템 배포라는, 나에게 깊은 경험이지만 청중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표는 기술을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라, 청중이 가져갈 한 문장을 만드는 과정”**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1. 신청 — 아쉬움에서 출발한 도전
FEConf가 끝나고 나에게 큰 아쉬움이 남았다.
준비 과정에서는 20분 넘게 하고도 모자랐던 내용이 실제 발표에서는 10분으로 끝났다.
“좀 더 깊게 파고들 수 있었는데…”
이 아쉬움을 해결하고 싶어 테오콘에 신청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디자인 시스템 배포라는, 오랫동안 정리하고 싶던 주제를 발표로 풀어보기로 했다.
2. 사전 미팅 —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함정
테오와 1:1 사전 미팅을 하며 내 경험을 시간순으로 설명했다.
삽질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기에 테오도 “이야기 자체는 좋다”고 했다.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것.
이때부터 슬슬 불안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 경험을 온전히 전달하고 싶었는데,
그 욕심이 발표의 범위를 걷잡을 수 없이 넓히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3. 발표 자료 만들기 — 내용은 40페이지, 피드백은 생각보다 혹독했다
먼저 글을 쓰고 그 글을 슬라이드로 옮기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자연스레 슬라이드는 40페이지가 넘어갔다.
사전 녹화를 제출하고 받은 피드백은 예상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 핵심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 설명 흐름이 너무 기술적이다
- 목소리가 너무 차분하다
- 청중과의 연결고리가 약하다
하나하나 곱씹으며 수정했지만 사실 이때도 “어디를 수정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4. 리허설 — 무엇이 어렵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사전 리허설에서 테오가 물었다.
“그럼, 이 발표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뭐였나요?”
그 질문에 나는 정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하나를 깨달았다.
“나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구나.”
다른 스피커들의 발표를 보며 그들은 논리 흐름이 깔끔했고,
청중 집중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도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걸 잘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 명확해졌다.
슬라이드는 수정하다보니 어느새 70페이지를 넘어갔고,
당일 아침까지도 수정이 계속됐다.
레이니가 1:1로 피드백을 주었고
그제야 슬라이드의 ‘정렬’이 잡히기 시작했다.
5. 발표 당일 — 슬라이드는 일방향이지만, Q&A는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
발표 당일 리허설을 한 번 더 했다.
긴장은 되었지만 견딜 만했다.
다른 스피커들과 인사하며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세션 2가 시작되자 압박감이 올라왔다.
앞 발표자가 짤로 분위기를 띄우는 걸 보며
“나도 이런 걸 넣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순서가 되었다.
준비한 대로 발표를 진행했지만, 솔직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발표가 약 22분 정도로 끝나고 Q&A 시간이 되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놀랍게도 발표보다 Q&A가 훨씬 편했다.
- 서비스와 패키지 분리를 어떻게 보나요?
- 디자인 시스템 적용 시 CSS override 전략은?
- Todo list가 많은데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었나요?
- 20mb 중에 결국 무엇이 문제였나요?
- 예측 불가능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레퍼런스를 찾으시나요?
이 질문들은 발표에서 다 담지 못한 부분들이었고,
내가 평소 고민하던 문제들이었다.
단방향 발표보다 상호작용 속에서
내 경험의 진짜 맥락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었다.
6. 뒷풀이 — 해방감,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된 ‘발표의 본질’
발표가 끝나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우리 조 사람들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60명 가까이 모인 뒷풀이도 갔다.
운영진분들이 직접 서빙까지 하며 분위기를 살려주었고,
테이블마다 이직 이야기, 회사 이야기, 각자의 고민이 오갔다.
행사가 마무리되고 테오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좀 아쉽다, 제대로 전달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테오는 혼도 내고, 격려도 해주었다.
그리고 “내년에 또 발표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다음 발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청중이 한 문장이라도 가져갈 이야기’를 해야겠다.
레이니가 나를 “아픈 손가락”이라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 이번 발표에서 내가 얻은 것, 놓친 것, 다음에 할 것
내가 얻은 것
- 오프라인에서 대중 앞에 서본 경험 자체가 큰 성장이었다.
- 기술적 내용을 발표 형태로 풀어보는 시도가 좋았다.
- 청중과의 Q&A에서 내가 가진 경험의 ‘진짜 가치’를 전달할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
- 욕심이 많아 발표 범위를 좁히지 못했다.
-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우선이었고, 청중 메시지가 정리되지 않았다.
- 기술 설명과 스토리텔링의 균형이 어려웠다.
- 슬라이드에 집중하느라 청중과 눈을 잘 맞추지 못했다.
다음 발표에서는 이렇게 할 것
- 청중이 무엇을 가져갈지 먼저 정의하기.
- 전달 범위를 과감하게 줄이기.
- 발표 자료 제작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나 방식을 찾기.
🎯 마지막 한 문장
이번 발표는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덕분에 발표의 본질을 알게 됐다.
좋은 발표는 기술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가져갈 ‘단 하나의 문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한 문장을 배웠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발표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